기사최종편집일 2024-04-1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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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 방어 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도 창작의 자유일까

기사입력 2021.03.28 10:27 / 기사수정 2021.03.28 16:39



SBS에서 나름 야심작으로 생각했을 퓨전사극 ‘조선구마사’가 준비된 내용을 다 보여주지도 못하고 폐업했다.

최근 SBS 측은 “편성 취소 이후 제작 관련 사항에 대해 문의하시는 부분들이 있어 답변드립니다. 제작은 중단되었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십분 공감하며, 작품에 참여했던 모든 스태프분들과 관계자분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조선구마사’ 관련 해외 판권 건은 계약 해지 수순을 밟고 있으며, 서비스 중이던 모든 해외 스트리밍은 이미 내렸거나 금일 중 모두 내릴 예정입니다. 시청자분들께 상처를 드린 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라고 전했다.

제작비가 32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무려’ 지상파 3사 드라마가 역사왜곡 논란, 좀 더 구체적으로는 동북공정 논란에 휩쓸려 문을 닫은 것인데, 실무자적인 관점에서 이 작품이 폐업되는 과정을 보면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저 320억 중에 방어 논리를 다듬는데 쓴 돈은 얼마나 될까”

이름값이 큰 곳일수록, 돈이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일수록 그에 비례해 상업적 논리와 방어 논리를 함께 챙겨야 할 때가 많은데, ‘조선구마사’는 그러지 못했다.

최대한 좋게 보더라도 ‘조선구마사’는 상업적 논리에만 함몰되어 작품을 만들다가 크게 넘어진 사례다. 역사 자문을 한 교수가 타 매체와 인터뷰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지적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답변한 것만 봐도 ‘조선구마사’ 측이 방어 논리를 다듬는데 얼마나 소홀히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동북공정, 역사왜곡 의도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는 가정 하에 보면, 이 드라마는 개별적으로는 폭발하지 않을 수도 있는 화학물질들을 생각 없이 한자리에 모았다가 대폭발 당한 사례다.


철저히 상업적인 관점에서 논란이 된 요소들을 하나 하나 뜯어보면, 짐작이 되는 의도들은 있다.

‘조선구마사’라는 소재는 넷플릭스 ‘킹덤’ 같은 작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보고 만들었을 것이고, 조선의 여러 역사 중에서 여말선초를 가지고 온 것은 이 여말선초 시기가 대표적으로 ‘팔리는’ 소재여서 그랬을 것이다.


중국풍 소품, 음악 같은 것은 제작 단계부터 큰돈을 안겨 줄 수 있는 중국 시장을 염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좀비와 조선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섞은 ‘킹덤’은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고, 여말선초 시기를 과감하게 재해석하고 각색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정도전’ 등은 명작 취급을 받고 있고 있다.

중국풍 소품, 중국 PPL 문제로 논란이 된 작품(여신강림)도 있었고, 역사왜곡 논란이 있는 작품(철인왕후)도 있었지만 이정도로 터지지는 않았다. ‘조선구마사’ 사건에 내재된 각각의 요소가 무조건 지금 수준의 폭발물질이 되진 않는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합쳐졌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선구마사’는 중국이 주도는 하는 질서가 누군가의 자유를 어떻게 빼앗는지(홍콩 등등)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그냥 지나간 역사 1이 아닌) 현대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시기인 여말선초를 드라마의 소재로 삼아놓고,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철저히 연구하지도 않고 방어 논리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풍 소재를 작품에 퍼붓다가 ‘폭발’이 됐다. 이걸 누구 탓을 할까.

앞서서 비교적 SBS와 ‘조선구마사’ 제작진의 의도를 ‘좋게’ 해석했으니, 이번에는 좀 나쁘게 해석해보자.

이미 ‘철인왕후’ 등이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음에도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논란이 될 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심지어 작가가 ‘철인왕후’ 작가와 같은 사람이고), SBS 측, 혹은 제작진 측(혹은 둘 다)에서 유력하게 했을 생각은 아래와 같다.

“논란은 좀 되겠지만 맷집으로 버틸만한 수준이지 않을까?”

이런 추측이 가능한 것은 물론 실제로 맷집으로 돌파한 ‘철인왕후’ 같은 사례가 있기 때문.

맞을 만한 펀치 정도만 날아올 것이라고 예상해 가드 올리는 것을 소홀히 하다 얼굴로 날아오는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고 K.O 당했다는 해석으로, 그렇지 않고서야 SBS와 드라마 제작진이 지금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 없다. 너무나 잘 보이는 곳에 있는 대전차 지뢰였고, 심지어 위험하다고 남들이 종도 열심히 쳐줬는데 굳이 그걸 실제로 밟고 터지다니.

작품을 유통한 플랫폼이 좀 마이너했거나, 작품에 들어가는 인력, 시간, 자본이 충분치 못했거나 했다면 ‘마이너 플랫폼 작품까지 일일이 찾아가서 항의하긴 그렇지’, ‘사람이니깐 실수할 수도 있지’, ‘여건이 좋지 않으니 시야가 다소 좁았을 수도 있지’라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을 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방송3사의 한 축 SBS이고, 작품은 수백억짜리 대형 프로젝트 아닌가.

방송 3사에서 방영을 결정한 초대형 프로젝트의 위기 감지 능력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게, 다른 작품을 향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방영 예정작들이 있는데, 그 작품들의 시야가 얼마나 넓을지, 방어 논리는 얼마나 또 튼튼할지.

이번 일을 보고 창작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생기고 있는데, ‘창작의 자유’라는 단어 앞에는 기본적으로 생략된 문장이 있다.

“반권력적인, 그리고 비권력적인”

비권력적이고 반권력적인 작품들을 위해 창작의 자유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 친권력적인 작품은 애초에 창작의 자유 안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권력에 친화적이어도 좋게 보기 힘들 텐데 그게 심지어 다른 나라 권력이라면? 이름값있는 많은 문인들이 펜으로 일제 앞잡이 했던 역사가 있는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인정받기 힘든 ‘자유’다.

내 작품이 친권력적 작품으로 보이기 싫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창작자로서 자유를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

다르게 이야기하면, 권력에 숟가락 얹을 생각부터 하는 이는 ‘창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tvX 이정범 기자 leejb@xportsnews.com / 사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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